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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싱턴 슬림블레이드 트랙볼 사용기

지금은 공간이 협소하거나 안정되지 못한 환경(산업용이나 군용)에서 주로 쓰이고 있는 트랙볼이지만, 예전에는 좀 더 많은 PC용 트랙볼이 시중에 나와 있었습니다. 컴퓨터 주변기기의 명가인 마이크로소프트나, 지금은 딸랑 두 종류만 내놓으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로지텍도 예전에는 다양한 트랙볼을 출시했던 적이 있습니다. 단종된 트랙볼들이 하나같이 점이 깨알같이 박혀있는 걸로 보아서는 아마도 롤러 방식의 센서에서 광센서로 넘어간 직후에 나온 제품인 것 같습니다.주1

하지만 켄싱턴에서는 아직도 많은 종류의 PC용 트랙볼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가장 저렴한 Orbit(스크롤 링이 없는 것)에서부터 지금 소개하는 슬림블레이드까지 다양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켄싱턴 슬림블레이드 01

슬림블레이드가 포장된 박스입니다. 제품이 출시된 시점에선 아직 윈도 10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을 테지만, 별도의 드라이버나 전용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하는 제품들의 특성상 호환성이 중요해서인지 윈도 10 호환 스티커를 따로 붙여놓았습니다.주2

 

 

 

켄싱턴 슬림블레이드 02

박스를 열면 본 제품이 나옵니다. 구성은 매우 간단합니다. 본체와 함께 워런티와 주의사항 등이 적힌 종이와 퀵 가이드, 전용 프로그램인 트랙볼웍스 등의 설명이 적힌 종이가 들어 있을 뿐입니다. 트랙볼웍스는 제조사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습니다.

슬림블레이드는 버튼이 네 개 달려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설정은 트랙볼웍스를 통해 변경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하단부의 두 버튼을 마우스 좌우 버튼으로 사용합니다. 여기에 윗쪽 두 개의 버튼에 필요한 기능을 할당해서 쓸 수 있고, 추가로 각각 윗쪽과 아랫쪽 버튼을 두 개 동시에 눌렀을 경우에도 기능을 할당할 수 있습니다.

 

 

 

 

켄싱턴 슬림블레이드 03

슬림블레이드가 다른 트랙볼과 다른 점은 역시 휠 스크롤 방식입니다. 따로 휠버튼이나 스크롤 링이 달리지 않은 대신에, 이와 같이 센서가 두 개 달려 있어서 Z축 방향의 회전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트랙볼 주변의 금속링 부분에 약지손가락을 대고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트랙볼이 부드럽게 돌아가며 스크롤이 이루어집니다. 참고로 금속 링은 안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어서 조작하기 아주 편합니다.

 

 

물리적 스크롤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사용자가 스크롤 기능이 동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제품에 내장된 스피커를 통해 알려줍니다. 이 때 나는 소리는 일반적인 마우스 휠을 굴릴 때 나는 소리보다는 조금 큰 편입니다. 그래서 이 제품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제 경우에는 적당한 정도였습니다. 오히려 싸구려 마우스의 휠 굴리는 소리보다는 훨씬 듣기 좋았습니다.

 

 

 

마우스만 쓰다가 트랙볼로 넘어온 경우에는 바로 적응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과정에서 좌절하고 되파는 경우가 많아서 중X나라에는 새것같은 중고가 넘쳐나고 있습니다.(저 역시 평화로운 그 나라에서 미개봉 신품으로 구했습니다.) 일단 죽어라 혹사시켰던 검지 중지 대신에 엄지와 새끼손가락으로 좌우 클릭을 담당해야 하고, 가만히 마우스를 잡고만 있던 엄지손가락이 가장 중요한 좌클릭을 담당해야 하니 적응이 쉽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제 경우에는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어서, 게임을 제외한 작업이라면 마우스와 별 차이 없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게임은 좀 무리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우스로 플레이하는 장르라면 마우스에 극한으로 최적화되어있을 것이고, 마우스가 아니라면 게임패드라는 상위호환인 제품이 존재하니 굳이 트랙볼을 사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며칠동안 트랙볼을 사용하면서 확실하게 느낀 것은 손목 하나만큼은 편해졌다는 것입니다. 커서를 움직이기 위해 손목을 바닥에 댈 필요가 없기 때문인데, 게다가 본체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마우스를 움직이기 위해 팔을에 움직일 필요가 없어서 팔에도 힘이 덜 들어갑니다. 이 제품을 사용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더라도, 게임이나 그래픽 관련 업무를 제외한 업무에는 트랙볼을 추천하는 편입니다.

다만 좋은 점이 있다면 나쁜 점도 있는 법인데, 아주 사소한 제품의 완성도가 살짝 아쉽게 느껴깁니다. 일단 유선형의 제품 특성상 버튼의 유격이 꽤 심하게 느껴지는데, 특히 길이가 짧은 윗쪽 버튼들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볼과 맞닿는 부위의 루비의 높이가 제각각이라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완벽하게 만들 수는 없는 모양이라 한쪽이 다른 두 개보다 좀 더 많이 튀어나왔습니다. 아직까지 사용하는 데 있어서 아무 문제 없지만, 어느 한쪽이 빨리 마모될 경우에는 좀더 빨리 수명이 끝나버릴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주3 커서 조작과 스크롤 조작을 트랙볼 하나로 해결하는 이 제품의 특성상 루비의 마모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위에 적어 둔 단점을 제외하면, 적당하게 큰 지름과 무게의 트랙볼주4 덕분에 부드럽고 섬세한 조작이 가능하고, 오래된 제품들일수록 촌스러운 디자인이 넘치는 트랙볼들 사이에서는 단연 눈에 띄는 디자인을 한 슬림블레이드는 트랙볼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제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주:

  1. 아직 광센서 기술이 크게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인식률을 높이기 위해서 그러한 모습을 할 수밖엔 없었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바닥면의 재질이나 무늬를 거의 가리지 않는 마우스들이 등장하는 것처럼, 트랙볼의 무늬도 눈에 쉽게 띄는 점 대신에, 아주 미세한 금속입자같은 게 표면에 뿌려져 있는 것들로 바뀌었습니다.
  2. 먼저 나온 익스퍼트같은 경우에는 윈도7로 넘어가면서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3. 5년짜리 장기 워런티를 제공하는 미국 버전으로 구입한 경우라면 많이 귀찮기는 해도 새 제품으로 교환받으면 되지만, 겨우 1년 보증에 루비는 소모품이라며 AS를 거부하는 국내 병행수입품을 구입한 경우라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분해 영상을 찾아보니 루비만 따로 교체하기 힘든 구조로 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애초에 수리 가능한 부품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당연히 자가수리도 힘들 것 같습니다.
  4. 롤러가 들어가던 시절의 익스퍼트 제품의 경우에는 무려 진짜 당구공(!)을 넣고 사용할 수 있었는데, 광센서로 바뀌고 휠마우스가 대세가 되면서 스크롤 링을 달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지름을 조금 줄였습니다. 따라서 현행 슬림블레이드와 엑스퍼트는 동일한 사이즈의 볼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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